문하생시절 이야기 - 식량이 최고의 가치다 -
제가 [삼국장군전] 화실에 막내로 있던 때입니다.

다른 식구들은 모두 화실에서 기숙사생활을 했지만 저는 집이 가까워서 출퇴근을 하는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청결상태는 제가 최고였죠. 대부분이 불편한 잠자리로 인해 피곤에 쩔은 얼굴에, 잘 씻지도 못한 몸에, 세탁이 잘 안된 옷에, 부실한 식단으로 인해 언제나 패잔병 수준의 상태였지만 저는 집에서 샤워하고 제 방에서 자고 아침까지 먹고오니 벌써 때깔에서부터 차이가 났었죠-_-

그렇게 문명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는 저는 화실식구들에게 부러움의 존재였습니다. 막내임에도 불구하고요.^^
그러던 어느날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저번의 그 폭발장면같은 대사고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꽤나 큰일이었습니다.

마감작업 시작하는 날, 늦잠을 자버린겁니다.-_-;
보통 늦어도 9시까지는 출근을 해야하는데, 무려 10시에 일어나버린 겁니다. 대체 왜 그렇게 늦게까지 잤는지는 지금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습니다.

자, 주간지의 마감첫날부터 막내라는 녀석이 2시간이 넘게 지각을 합니다.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오시나요? 평소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거리였지만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앉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라고 속으로 계속 중얼 거렸습니다. 정말 미치겠더군요. 당시에는 휴대폰도 없던 때라 그저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퍼뜩 생각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비어있던 화실의 냉장고. 거의 매끼니를 라면으로 해결했던 그 당시, 간식같은 건 생각도 못했습니다. 지갑을 뒤져봤습니다. 딱 1만원이 있었습니다. 바로 슈퍼로 갔습니다.

거기서 1만원 꽉꽉 채워서 간식거리를 샀습니다. 과자,음료수,아이스크림.등등 그때만해도 만원이면 과자 꽤 많이 샀습니다. 가득찬 비닐봉지를 양손에 각각 들고, 화실로 들어갔습니다.

"야, 너 뭐하다 지금......!!!" 

딱 이런 반응이었습니다.

"이 자식! 이거 준비하느라 늦은거냐. 이런 기특한 놈!"
"아니면 지각한거 이걸로 때우려한거야? 이 쉑, 천잰데?"
"괜찮아, 괜찮아. 좀 늦을 수도 있는거지!"

간식 두 봉지에 화실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속으로 '해냈다.'를 외쳤습니다.
이미 제가 지각했다는 것은 아무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전 저녁식사당번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설겆이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머리를 쓰라고 했던가요?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요? 한동안 저는 요즘말로 [개념잡힌 놈]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만화화실도 사람사는 곳입니다. 맛있는거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만화화실에 방문할때 뭐 가져갈지 걱정하지 마세요. 과자와 음료수 가져가면 극진히 대접받습니다. 반찬거리요? 국빈대접 받습니다.

지금은 화실을 떠나있는 저입니만 화실에 들릴때 빈손으로 갈때와 먹을 것 들고 갈때 선생님과 문하생들 반응이 다릅니다-_-;
시간은 지났어도 여전히 만화화실에서는 식량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by 비홀더 | 2007/12/01 05:53 | 만화업계이야기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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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카리스 at 2007/12/01 08:33
작업 방해되실까봐 화실을 가는 일은 한동안 없을거 같지만
나중에 서울 올라갈때 생각나면 저 사실을 유념해 둬야 겠군요...
근데 반찬거리는 무려 국빈인가요...
Commented by 냥이 at 2007/12/01 11:53
재미있는 일화네요^^
Commented by 비홀더 at 2007/12/01 19:19
카리스// 글쵸-_-;
냥이// 지금 돌아보면 마치 군대얘기하는 기분?
Commented by MerLyn at 2007/12/01 19:29
화실이라는 곳 자체가 참....ㅎㅎㅎ;;;;
전 입시 끝나고 화실에 반찬 들고 가니까 국빈이 뭡니까. 신으로 보던걸요(;;)
Commented by 비홀더 at 2007/12/01 19:43
멀린//ㅋㅋㅋㅋ
Commented by StoryJeong at 2007/12/02 02:17
푸핫핫핫.....ㅠㅠ乃
그나저나 삼국장군전 재미나게 보고 있는데 말이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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