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터넷 소설가들과 막장드라마 작가들에게 사과한다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제목부터 오타쿠 냄새가 불쾌하게 풍기는 이 작품은 당연히 관심이 없었지만, 꽤 재밌는 내용이라는 후배 녀석의 말에 호기심이 발동해 보게 되었다. 사실 이 후배 녀석의 문학적 재능은 상당한 것이었기 때문에(여기서 이 녀석의 재능이란 정통문학 쪽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이 녀석은 학창시절 때 순수문학으로 받은 상이 적지 않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설정은 독특했다. 주인공이 아닌 여동생 쪽이 애니메이션 오타쿠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동생물을! 게다가 단순한 동인녀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엄친딸, 타고난 재능뿐만 아니라 엄청난 노력파에 책임감까지 강했다. 이런 상상자체에 큰 점수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여동생에 대한 환상’라는 공감은 전혀 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오빠로서, 오빠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여동생은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여동생이 귀여운 건 (작품 속)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지 친오빠로서는 도저히 귀엽다고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여동생에게 단지 ‘여동생이니까, 오빠니까’라며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연상케 하는 아량과 자비를 베풀며 온 몸을 다해 도와주는 오빠에게서 ‘오빠에 대한 환상’을 느낄 정도였다.


1,2권을 보면서 느낀 것은 그게 다였다.


하지만 3권은 달랐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인기 폭발인 끝내주게 세련된 여중생으로서, 십대 잡지에서 톱모델을 하고 있고, 육상부 에이스에 학력고사에서 현내 5위에 드는 이 무시무시한 여동생이 이번엔 휴대폰 소설가로 데뷔하게 된다(일본의 휴대폰 소설이 뭔지 궁금하다면 우리나라의 인터넷 소설을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이 여동생이 쓰는 소설이라는 물건의 설정을 살펴보자.


캐릭터 설정

주인공 - 이름은 리노. 중1. 그냥 귀여운 편<-내 반 정도 수준으로 귀여움. 굉장히 순정적인 성격. 연애를 매우 소중히 여기며 상처 입기 쉬움. 완전히 귀여운 여동생이 있다. 동생 이름은 시오리.


남친1 - 이름은 테츠. 갑자기 덤프트럭에 치여 죽는다. 조금 난폭하긴 해도 가끔은 친절해지는 타입 *여자애와 사귀는 게 처음이라 다루는 데에 익숙하지 않음.<-귀엽지 않아?


남친2 - 이름은 카즈. 32세. 벤처기업의 젊은 사장. 실은 애 딸린 유부남. 회사와 부인에게 불륜이 들통 나서 주인공을 버린다. 사회적으로는 파멸. 자살시킬까? 잠자리 테크닉이 아주 뛰어남. 양복 모에. 주인공과는 장난삼아 사귀고 있는데 가끔 진심이 될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함. 어른스러운 남자로 그런 남자를 휘두르는 주인공 멋지지 않아?


남친3 - 이름은 토시. 마지막에 맺어지는 사람. 왕 훈남. 사실은 부자인데 부모의 돈은 쓰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함. 고2. 맨즈 논노에서 독자 모델을 함.<-알바비는 밴드 활동으로 다 써버림. 밴드에서 보컬 담당. 기타도 칠 수 있음. 금발. 성적은 학년 톱. 축구부 주장도 하고 있다. 굉장히 착하고 걱정이 많다. 주인공을 좋아하지만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무슨 일에나 열심이고 아무리 힘든 때에도 포기 하지 않는다.


.....엄청 짜증나는 설정 아닌가? 진짜로 읽던 책을 집어던질 뻔했다. 하지만 더더욱 미치게 만든 것은 내용이었다.


프롤로그에서 남친1이 덤프트럭에 치어죽고, 젊은 롤리콤 사장한테 걸렸다가 버림받고 자포자기해서 원조교제. 완전히 불량해진 주인공에게 토시라는 녀석이 접근. 이 녀석은 굉장히 착하고 멋지고 또 완벽 그 자체로 리노의 원조교제를 꾸짖고 그만두게 하려 도움을 준다. 남성불신인 리노는 당연히 좀처럼 믿으려하지 않지만 토시는 끈기 있게 상대해주어 리노가 마음을 열게 한다. 정말 편리한 남자다. 그러던 어느 날, 토시가 차에 치여 기억상실이 되고 만다. 그런데도 토시는 다시 리노를 좋아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리노가 강간을 당하고 만다. 그래도 토시는 리노를 좋아해주고 위로해주고 지켜준다. 그런데 어느 날, 토시가 백혈병에 걸리고 만다. 리노는 토시가 입원해버리는 바람에 너무나 외로워져 토시의 절친과 바람을 피우고 만다.


절친이 배신한 것을 알게 된 토시는 스스로 물러서지만 리노는 역시 토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토시를 선택한다. 리노에게 배신당한 토시의 절친은 그날 밤, 바이크를 몰고 폭주하다 죽는다(지금까지 사귄 남친 전원 사망). 함께 우는 리노와 토시. 두 사람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끝까지 함께 보내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사랑의 힘으로 병이나 기타 등등이 다 사라지고 해피엔딩!!


테마 - ‘순애’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뭐야, 이거!!!!!!!!!!!!!!!!!!  이딴 게 용서가 되는 거야?!!!!!


더 가관인건 이게 웹상에서 여자독자들이 ‘공감’한다고 ‘감동’했다고 대히트를 친다는 거다. 출판사의 편집자는 이게 팔릴 물건이라는 걸 알아보고 굉장히 잘 만든 작품이라며 극찬을 한다.


정말 무서운 건 이게 단순한 소설속의 소설이 아니라 실제 일본의 휴대폰 소설계라는 게 이렇다는 거다.


아무튼 이러한 책이 나온 건 좋은데 여동생이 이 원고를 빼앗겨 다른 작가가 도작을 하여 발매가 된다. 이걸 되찾기 위해 주인공인 오빠와 여동생의 악우(惡友) 쿠로네코가 출판사로 찾아가게 되는데 거기서 도작한 가짜작가 페이트와 일대 설전을 벌이게 된다. 결국 페이트는 이실직고 하게되는데 이때 쿠로네코가 페이트와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쿠로네코 역시 작가 지망생이지만 데뷔조차 못한다). 이때의 울분을 토하는 둘의 대사가 참 인상 깊다.


“알고 있어요. ‘리노’의 휴대폰 소설 이야기 말이죠? 아하, 정말 웃겨요. 10년간 날마다 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썼던 내 소설이 재미없다고? 몇 달 전에 장난삼아 쓰기 시작한 어린애의, 문장 작법조차 엉망인 휴대폰 소설이 재밌있어? 장래 유망한 신인? 히트작이 될 징조가 있어? 하..., 그게 뭐야. 이런....이런 일이 말이 돼요?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내가 쓴 소설이 그렇게 짓밟히고 혹평을 받았는데 왜 저런 쓰레기 같은 휴대폰 소설이 칭찬을 받는 거지. 정말 알 수 없어. 내가 가장 증오하는 종류의 물건이 세상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데 내가 쓴 건 전혀 못 써먹겠다니. 자기만족에 쓸 만한 게 안 된다고? 자기 마음대로 쓴 건 저것도 마찬가지잖아. 왜 나만 모두 부정당하는 거지?”


“훗, 그 심정은 잘 안다고. 너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3년 동안 지침서를 읽고 소설 작법 사이트에서 공부를 해가며 투고하고 교류도 하고...내가 좋아하고 생각하는 것을 써왔으니까. ...당연히 분하지. 아아, 분해, 분해, 분해. 부럽고 샘나. 그런 걸 즐겁게 쓰고 의기양양해하는 작가도, 그런 걸 읽고 재미있다, 멋지다고 칭찬해대는 편집자도 모두 다 죽어버리면 좋겠어. 이런 말이지?”


노력이 보상받지 못했을 때의 비참함.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것만을 떠받드는 세상.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는 다른 누구. 좋아하는 것을 자기 마음껏 하고 인정받는 누구.

그 패배감, 질투심.


이건 내 이야기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현재의 인터넷 소설을 경멸했다. 귀여니가 그 첫 번째였다. 문장 같지도 않은 문장. 난무하는 이모티콘. 말도 안 되는 캐릭터 설정. 개연성 없는 진행.


왜 이딴 쓰레기가 작품으로 인정받고 대히트를 하고 일류대학에서 학위를 주고, 영화로 만들어지고, 해외수출까지 되는 거지? 어째서!


그게 나였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오빠)은 말한다.


“당신이 훔친 그건 내 동생이 열심히 쓴 거야! 굉장히 열심히 노력해서 쓴 거라고! 그렇게 끔찍하게 싫어하는 오빠와 같이 취재하고 열이 있는데도 쓰러질 때까지 전화기를 만져가며 나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했어.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온 거지. 그걸 보지도 못한 주제에 아무것도 안 했는데 잘 나간다는 소린 하지 마!”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 같았다. 그랬다. 이 여동생은 한겨울에 코트 위에 찬물을 끼얹어 벌벌 떨며, 작품 주인공의 심정이 되어보기도 했다. 그걸로 독감에 걸려 쓰러지면서 까지 글을 썼다. 다른 일들을 소홀히 하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 받을까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빡빡한 스케줄 속에 글을 썼다. 그게 성공한 거다.


귀여니라고 다를까?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는 막장드라마 작가는 다를까? 내가 보기엔 허술하고 엉망인 것 같지만 분명히 그만큼 노력을 했을 거다. 심심풀이로 설렁설렁 쓴 작품이 남에게 인정받을 리는 없다. 그건 진실이다.

그런 내용을 싫어하는 나와는 달리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걸 쓴 것이고 그들에게 환영을 받아 그들에 의해 성공한 것이다. 내가 그들을 욕할 권한은 전혀 없다.


뭔가 눈이 떠 진 것 같다.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분노. 갈 곳을 잃고 토해낼 곳을 찾던 그 울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동안 경멸했던 인터넷 소설작가들에게 미안하다. 당신들은 노력했고 정당한 대가를 받은 거다. 그뿐이다.

by 비홀더 | 2009/10/17 18:41 | 애니메이션/게임/소설 | 트랙백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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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피두언냐 at 2009/10/17 18:55
그냥 니 쓰고 싶은 거 쓰세효...
Commented by 비홀더 at 2009/10/17 20:57
그럴거야.
Commented by 카바론 at 2009/10/17 20:53
“당신이 훔친 그건 내 동생이 열심히 쓴 거야! 굉장히 열심히 노력해서 쓴 거라고! 그렇게 끔찍하게 싫하는 오빠와 같이 취재하고 열이 있는데도 쓰러질 때까지 전화기를 만져가며 나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했어.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온 거지. 그걸 보지도 못한 주제에 아무것도 안 했는데 잘 나간다는 소린 하지 마!”

ㅡ 지랄(......)
Commented by 비홀더 at 2009/10/17 22:17
책을 읽어본 저로서는 욕할 수 없더군요.
Commented by ..... at 2009/10/17 20:56
솔직히 성균관대가 1류라긴 좀 그렇고 1.5 류 혹은 아직은 2류지.

문과에선 말이야.
Commented by 비홀더 at 2009/10/17 22:18
그런가요? 사실 대학 순위는 잘 모릅니다.
Commented by rumic71 at 2009/10/17 21:39
표절이 아닌 이상 힛트치면 더 할 말이 없더군요...
Commented by 비홀더 at 2009/10/17 22:18
동감입니다.
Commented by 해명군 at 2009/10/17 21:59
읽을수록 "오빠의 등 뒤에 연꽃광배가 보여요!!!!!" 하고 독자를 뉴타입으로 만들어주는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관점도 있을 수 있군요!!!!!!!
Commented by 비홀더 at 2009/10/17 22:19
카바론 // 책을 읽어본 저로서는 욕할 수 없더군요.
.....// 그런가요? 사실 대학 순위는 잘 모릅니다.
rumic71// 동감입니다
해명군// ^^
Commented by 詩人 at 2009/10/17 23:41
글쎄요... 전 그다지... 전 귀여니가 그 글을 쓰면서 어떤 노력을 했을지 잘 상상이 가질 않더군요(-_-).

뭣보다 귀여니 소설 중에는 '꽃보다 남자'와 완전 판박이인 물건도 있었고 말이죠(ㄱ-).
Commented by 詩人 at 2009/10/17 23:51
아 물론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타인의 작품을 도작하는 것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귀여니 류의 작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작을 할 시간에 부지런히 글을 써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잘못된 선택을 했군요. -ㅅ-
Commented by Sourjelly at 2009/10/18 00:35
이건 애초에 상황이 비틀려 있잖아요 -_-;;;
일단 상황해석부터 바로잡아야죠

1. 주인공 -> 잘나가는 소설가 동생의 오빠
2. 쿠로네코 -> 데뷔못한 소설가 지망생
3. 페이트 -> 리노 표절
4. 리노 -> 잘나가는 소설가


이라고 봐야지,

1. 주인공 -> 귀여니 스타일 소설가의 대변인
2. 쿠로네코 -> 데뷔못한 소설가 지망생
3. 페이트 -> 데뷔못한 소설가 지망생2
4. 리노 -> 귀여니 스타일 소설가


로 읽으니까 이런 상황이 오는 겁니다 -_-;;
애초에 귀여니와 이 소설 주인공의 동생인 리노가 같은 상황이 아니잖아요?

귀여니는 표절로 흥해서 파도타기를 한 인물이고 -_-;;
Commented by 크로이 at 2009/10/18 03:23
본문에는 귀여니라는 작가만 나왔지만,

블로그 주인장께서는 귀여니 외에 다른 분의 소설도 포함한것이 아닐까요^^
Commented by 그란덴 at 2009/10/18 03:05
문득 궁금한건데, 대중의 입맛을 맞추는게 글만 붙잡고 죽어라 쓴다고 되는거였나요?



요리가 맛난건지 아닌지 알려면 만들고 요리를 집어먹어봐야 하는것처럼, 대중의 취향을 알기 위해선 그 대중(여기서 대중이란 그 만들어질 작품을 읽어줄 독자를 말함)이 바라는것을 이해해야 하지 않나요.




열심히라는 말, 노력해야 한다는말, 말 자체는 좋은데 너무 포괄적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뭔가 살짝 비껴나간다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ㅇㅅㅇ..
Commented by ゆびさきミルクティ at 2009/10/18 13:12
어차피 nt노벨이라는 게 손에 들고 가볍게 볼 수 있는 소설 장르기 때문에
문학성까지 따지면 nt노벨이 아니겠죠.

Commented by 환상진혼 at 2009/10/18 16:21
어라 인작과 야뇌 백동수의 그 비홀더 님 맞습니까?
Commented by 명상 at 2009/10/18 21:31
잘 모르겠군요.
인터넷에서 키보드 타닥거려서 만들어진 [문자와 각종 부호들의 조합]이 그냥 "나름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인정받을만하다 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하긴 어차피 문단이나 평론가들에게 인정받는게 아니라 그냥 "그 세대들"에게 인정받으면 되는거니 별로 상관도 없겠지요;
사실 문제는 귀여니씨가 뭘 만들었다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 어이없는 것들을 보고 아무런 문제 의식없이 받아들이는 이들이 더욱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TextHolic at 2009/10/27 11:53
문제는 항상 기준 미달인 것들이 어떻게 좀 숟가락 좀 얹어보려고
깔짝 대니까 일어나는 현상이죠. 또 그런걸 대범하지 못하게 발끈하는
기존 포지션도 문제 이기는 하지만...;;;

귀여니가 아무리 많이 팔려봐야 그냥 인기좋은 장르소설이지,
작품 자체가 위대한건 아니듯이 말이죠.

클래식 앨범보다 아이돌 싱글앨범이 잘 나간다고 클래식의 가치가
떨어지는게 아니고, 싱글앨범의 가치가 올라가는건 아니죠.

그냥 그 포지션에서 최선만 다 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서로의 노력의 가치는 인정하되, 포지션은 지켜야겠지요.
달빠들의 문학작품드립만 아니면 페이트도 나름 재미있는 게임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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